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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사랑회복수기 우수작 - 「중독」 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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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OO님 작성일19-08-24 10:52 조회18,2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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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

 

#1. 중독의 무지(無知)

 

알코올에 중독되어 일상적인 생활을 잃어버린 지도 벌써 4년이 가까워온다. 정년퇴직이 아닌 권고사직으로 마감한 나의 생활은 결국 술과 함께 마감을 하게 되었다. 내 말년 생활의 추함을 인지했을 때조차도 중독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중독의 실체를 안 것도 불과 수개월 전의 일이다.

이곳 한사랑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서야 중독의 실체를 알았으니 어찌 보면 중독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한마디로 무지(無知)했던 것이다. 중독의 잔인함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내 육체와 정신은 파괴되어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 대학시절부터 철학, 사랑, 운명, 청춘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술을 마셨으나 실제는 열등감에서 마신 술이 그대로 내 뇌 속에 시꺼먼 재로 남아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내 자신은 마치 요술쟁이나 글쟁이라고 허풍을 떨면서 행동했던 것이 우습기만 하다. 불과 4년전 다녔던 회사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의 뒤에 술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때까지도 알코올중독이라는 말은 그저 길가의 노숙자 행태-타락한 술주정뱅이, 방자한 인간군상-의 행위로만 인식하던 때였기에 전혀 내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단지 내 자신의 성격적 결함-욱하면서 불의를 못 참는 분노-으로 인지하고 거의 무시해버린 것이다. 폭행사건으로 천안법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실의에 빠져 미친 듯이 음주했고 몸은 고사된 나무처럼 변해갔으며 정신은 거의 몽롱한 상태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으며 생활은 이미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창원 STX 조선에서 근무하는 대학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선배 술 그만 쳐먹고 배에서 일이나 하죠” 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자식이 어찌 내 사정을 안다는 것인가?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친구들로부터 들은 얘기라는 것인지라. 많은 고민과 번민 끝에 창원에서 다시 해보자는 생각에 몸을 추스르고 병원치료를 하면서 우선 운동으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2. 알코올중독에 빠지다 배수지진

 

이미 폭행사건 이전에 마누라와 이혼도 했고, 자식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오직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하겠는가 생각하고 제2의 출발을 외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와 배수지진(背水之陣)의 각오를 가지고 창원으로 내려갔으나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신체검사 결과 여러 문제점이 나와 배에서 일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 즉시 운동과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술은 일체 마시지 않았으며 요양보호사 학원에도 등록했으며 2-3개월이 지나 후배소개로 STX조선의 하청업체에 잡부와 같은 막일을 하게 되었다.

온갖 궂은 일, 허드레 일을 하면서 운동을 계속한 결과 정신과 육체도 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무척 기뻤으며 그러는 동안에 집행유예 의무도 사회봉사명령 180시간을 창원의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는데 그 병원에서도 책임감 있게 일을 한다하여 직장까지 구해주었지만 고사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도 중독자임을 몰랐던 것이다. 조선소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배위에서 맞이하는 해풍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6개월 동안 열심히 일하던 도중 동료로부터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조선경기 불황으로 인원감소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리대상이 되고 말았다. 너무 억울했고 불합리하고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다 헛수고였다. 그렇다고 앉아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함안 소재의 소규모 자동차부품 공장에 취업을 했다.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중독이라는 악마는 슬슬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독선과 오만 그리고 거만함이 거의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나는 악마와 타협할 무기인 겸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만큼 중독이란 악마의 정체는 알기가 어려울 정도로 교활하고 영특한 놈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을 하던 도중 알코올은 이미 내 정신과 육체를 마음껏 유린하기 시작했다. 악마는 나에게 항복을 강요했으나 나는 끝까지 저항하며 알코올과 싸웠다. 그것도 잠시뿐 알코올은 나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공격으로 일관했다.

나는 드디어 알코올에 백기를 들었고, 창원에서 치료받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술 마시고 도로가에 쓰러져 있던 나를 발견하고 지나가던 택시기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차에 치어 죽었으면 하는 생각.. 병원에서 깨어보니 낯선 곳이었고 일어서려하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거의 체념상태였다. 머리는 아프고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주치의가 들어와서 내 귀에 큰 소리로 “큰일날 뻔 하셨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순간 나는 수치심에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눈가에 눈물만 고여 있음을 알았다. 내게 남겨진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장한 자존심? 덕분에 억지로 생 때를 쓰면서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으나 퇴원 후 바로 술 먹는 내 모습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똑같이 똑같은 방법으로 그 병원에 다시 입원했으며 주치의의 말을 듣고 수개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2개월 정도 금단치료와 심리치료를 받던 도중 아무것도 하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악마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수소문 끝에 창원보건소 소개로 지금의 한사랑병원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중독관련 전문치료를 받게 되었다.

 

#3. 중독의 실체 그리고 폐해

 

벌써 그때가 2년전이었다. 한사랑병원의 생활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을 했으며 회복프로그램도 정말로 유익했다. 또한 중독의 실체도 알았고 나름대로의 퇴원후의 계획도 수립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내 자신의 결점인 ‘교만’을 몰랐던 것이다. 이 교만함을 가지고 또 다른 쪽에서 망상을 꾸고 있음을 발견하고, 퇴원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두려움도 있었고 그간 내 자신과 타인에게 준 피해를 상상하면 치가 떨린다. ‘죄책감’‘수치심’에 몸은 점점 위축되어갔고 ‘정신’은 ‘자존감’을 상실한 채 혼돈의 어둠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동안 나를 격려했던 친구, 형님 이들의 얼굴을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부딪혀 보자고 작정하고 퇴원해서 충청도 소재 성당에서 운영하는 복귀마을에서 8개월을 생활하다 약간의 방심으로 다시 원래 중독 상태로 마산으로 돌아왔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모텔을 잡아 술을 마시던 중 핸드폰 추적으로 형님께서 나를 찾아내어 이곳 한사랑병원으로 다시 입원시켰다. 입원하는 과정에 나는 형님께 맹세를 했다. 형님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는 안 된다’ ‘재발하면 끝’이라는 사실과 함께 내 아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말라고 하셨다. 펑펑 울었다. 그것은 안도의 절규일지도 몰랐다. 내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처량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 울음 속에는 희망과 기가 솟는 그런 절규였다. 또한 평생의 거짓말을 이 시기에 80%이상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은 ... 안된다’ 라는 생각으로 철저한 자기 관리와 금욕하는 자세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진정’ 알코올이 이렇게 인간을 처참하고 처절하게 파괴시키는구나.. 피부로 절감하면서 열심히 치료받고 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중독에 대한 ‘생리학’ ‘뇌구조’ ‘심리학’ 행동학적‘ 요인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되었는데 경이로운 일은 ’뇌‘구조의 ’메커니즘‘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너무 신비롭기만 했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중독은 뇌질환이라고 하는 이유도 정확이 알았으며 결코 인간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음도 알았다.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 영적 각성의 필요성도 알게 되었으며 또한 건전한 내 자신을 성찰한 게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이 기간에 과거의 신앙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음도 알았기에 실로 거룩하신 주님의 은총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되어서 다른 사람보다 앞으로의 계획이 알차게 준비되고 있음을 자각하게도 되었다.

 

#4. ‘주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

 

매사에 신중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병동생활을 하고 있으며 규칙적인 생활과 일기쓰기, 독서, 창작 등 안정병동에서 생활하던 중 담당사회복지사로부터 한권의 책을 권유받게 되었는데, 책 제목이 ‘중독과 은혜’였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내 가슴은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기 시작했으며 강한 회오리가 내 머리를 후려 때리고 있었다. 전율을 느꼈다. 가슴 뭉클함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으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환희의 기쁨으로 충만되어 말로 형언키 어려운 희열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어느덧 눈가에는 기쁨의 눈물이 고여 있었고, 머리는 맑아졌으며 호흡은 편안해졌으며 모든 것이 평온함 그 자체였다. 이것이 정녕 ‘주님의 은혜’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라하고 암울했던 지난 과거-육신은 재가 되고 정신은 말라버렸으며 영혼은 실종된 것처럼 져버린 나에게 이런 마음을 일깨워준 책에 키스의 세례를 퍼붓고 감사의 기도를 했다. 돌이켜보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추하고 더럽고 증오스러운 내 삶에서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남을 진정으로 느끼면서 신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요 사랑임을 알았으며 이웃의 소중함 또한 깨달았으니 어찌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5. 나의 투쟁-맺음말

 

앞으로 다가올 투쟁에서 승리하는 길 아니 벗어나는 길은 ‘겸양’ 과 ‘신중함’ 그리고 ‘위대한 힘’뿐임을 새삼 느낀다. 그간의 ‘독선’과 ‘아집’ 그리고 ‘교만함’에서 탈피하여 헌재 내가 숨 쉬고 있는 이곳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가치 있는 삶을 목표로 삼아 행동하면서 내게 주어진 책임과 소임을 기꺼이 헌신하는 자세로 임해야만 진정한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안 것은 진정 감동, 감격 그 자체이다. 그렇지만 아직 부족하다. 5개월이 지났지만 더 교육이 필요하다.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또한 ‘수용전념치료(ACT)프로그램’이 나를 변화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 감사한다. 아울러 옆 환우들의 격려도 나에게는 진실로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감사의 글

 

앞으로 매사에 순응하고 규칙과 생활을 습관화하고 조건화시킨다면 교묘하고 악랄한 알코올의 압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수반한다. 통제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기에 참 자유인 통제된 자유를 살고자 한다. 끝으로 도움주신 주위의 동료환우, 사랑과 격려로 이끌어 주신 김진원 원장님, 중독센터의 김정숙 선생님, 한사랑병원의 이 호 사회복지사, 마지막으로 ‘중독과 은혜’ 책을 선물해주신 민병률 사회복지사에게 진솔한 마음을 담아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중독의 치유는 어렵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가 함께 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다. 삶이란 도전 아래 항상 존재하기에 포기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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