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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사랑회복수기 회복작 - 진정한 삶의 여유와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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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OO님 작성일19-08-26 14:45 조회21,1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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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까지만 일을 해달라는 약사님의 말에 예기치 못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일을 내 일처럼 하는 스타일이라 억울하고 화나고 분했다. 그렇게 집에서 이 병원에 오기 전까지 3개월을 나 혼자 숨긴 병, 식이장애와 잘못된 알코올 습관을 매일 반복했었다.

그렇게 부모님이 출근하신 오전 9시 반부터 엄마가 퇴근하고 오기 전 2시 반까지 폭식하고 토하는 습관을 반복했고, 500ml 맥주 2캔으로 내 불안한 마음과 스트레스를 TV와 함께 해소하였다. 잘못된 행동인 것도 알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는데, 내 생각과 몸은 매일 따로 놀았다.

내 방 베란다에 가서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세상 천지에 한()은 내가 다 짊어진 듯 한숨을 내쉬고 뒤돌아서면 항상 기다리는 건 사랑하는 애완견 달콩이와 화장실이었다. 음식은 입에 대는 순간 설렘과 기쁨을 주지만 두 세 숟갈을 먹으면 배가 금방 불러온다. 그때 그 불안함과 우울, 긴장을 달래주는 게 물과 음료수가 아닌 술이 선택되었다.

인문계 출신인 나는 식품영양학 영양사가 되기 위해 자연계로 진학을 하여 원하는 곳으로 갔지만, 2학년부터 전공이 나뉘게 되자 친한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갑작스레 피부 관리사라는 직업이 와 닿아 휴학 후 타 대학 미용 학과로 편입하였다. 또래 학생들은 이미 미용 고등학교 및 학원에서 자격증을 따거나 다 배우고 왔기에 손에 익숙한 일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처음이었기에 힘이 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선택한 길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내 감정을 표현했다면 지금 있었던 일도 100%에서 1% 정도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게 나도 실력이 늘고 손재주가 있었던지라 헤어커트 시간만 빼고는 잘 따라 갔고 졸업이후 교수님 추천으로 서울에 있는 피부 관리실에 취직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 생활은 길게 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일도 재밌고, 동료도 직장도 좋은데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기에 내가 너무 감정이 풍부한 것인지 향수병이 심해 부모님 몰래 그만두었다. 이후 몇 번의 일을 하기는 했지만, 일에 대한 강박과 심해져 버린 섭식 문제, 직장 내에서 풀지 못한 쌓인 스트레스, 지인의 대한 배신으로 분노, 우울감이 한꺼번에 나에게 다 들이닥쳐 술에 힘을 빌려 감정을 추스르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쓰러져서 작년 3월 포항의료원에 입원하였다. 여기서 13년간 내가 그렇게 숨기려 했던 힘든 고통의 시간의 원인을 부모님께 병명을 들통 나버렸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고 계속 전해질 맞던 때 엄마가 나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OO아 지금 엄마가 묻는 말에 똑바로 말해. 너 매일 토했어 안 했어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기고 싶었지만,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겉옷을 홀라당 벗겨 낸 것 같고 초라하게 힘없는 알맹이만 남은 내 모습을 보여드린 게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입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살찔 걱정으로 식사를 거부했고, 맥주가 생각나 병원 인근 편의점에서 맥주 3캔을 구매하고 2캔을 마신 뒤 찬장에 두었다가 부모님에게 들키고 나서야 부모님이 음주치료를 위한 입원 권유를 하였고 지치고 힘들다 생각되어 입원에 응하게 되었다.

그렇게 포항의료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고 아빠 차에 실려 김해 한사랑병원에 오게 되었고, 그날 정상적인 저녁 식사를 몇 년 만에 먹었다. 먹기 시작하고 토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타고난 호기심과 활달한 성격으로 병동 생활에 잘 적응해갔고, 병동 내 모든 이들이 ‘OO라 부르며 친밀감을 표현할 때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입원하고 주치의 회진 때마다 힘든 것은 없어요?’라고 물을 때 없다고만 말했다. 내 마음을 들키기 싫은 것도 있었고, 내가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까 봐 겁도 났기 때문이다.

입원 이후 3개월 만에 외박 시 음주를 계획하고 마시게 되었다. 6개월 만에 마신 맥주 1캔으로 속이 쏴함이 느껴지고, 담배를 피우고,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내 세상이었다. 하루 일찍 귀원하는데, 1층에서 발걸음을 돌려 병원 사람들(퇴원, 외출, 외박)이 모인 곳으로 연락이 닿아 갔던 그 때가 인생에서 잊지 못할 값진 경험 하나가 되고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뉘우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124일쯤 1층 개방 병동으로 내려왔지만 9일 만에 음주로 다시 5병동으로 올라갔다. 놀랐다. 하지만 발뺌하였고, 피검사 이틀 후 알코올 검사결과 25가 나왔을 때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중독자라는 말과 함께 내 생에 병원 생활을 처음 했지만 잃는다기보다 얻는 것이 많았다. 손해가 아닌,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1w 110, 창가 앞에 앉아서 이래저래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매일 매일을 감사하며 산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 또한 나 또한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지 않느냐. 몰라서일 뿐 아니냐. 자기감정에 서툴렀고, 더더욱 나보다 남을 더 신경 쓰고, 의식하고, 내가 주체가 아닌 남을 주체로 이제껏 살아왔다는 사실에 가면을 써왔다. 교육을 반복해서 들어 알아도 그때그때 깨닫는 바와 느끼는 감정, 생각들도 다르다. 이곳에 와서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내가 그동안 알지 못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더 나아가 나도 성장해서 나가 병원비가 아깝지 않다. 나 스스로 습관도 바뀌고 원래 성격대로 활발하게 돌아오고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는 법과 소통, 대인관계,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움 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 나의 어릴 적 한 장면 장면을 매번 돌아보며 아 이때 이래서 이랬구나. 그런 거구나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매일 일기를 2장씩 써 내려갔고 나 자신에게 항상 좋은 말, 아니면 수고했지?’ ‘사랑해등등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중간 중간 좋은 글귀나 책의 내용도 메모하는 좋은 습관도 생기고, 심리학에 재미도 생겼다. 대학교 이후로는 공부를 피부 쪽만 관심 두었는데, 다시 공부하고 싶고 공부가 가장 쉽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소통은 진심어린 마음이 통하면 자연스레 대인관계에서 인맥이 형성되고 그것이 큰 것을 가져다준다는 것,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정말로 진심으로 공감하고, 사랑하고 걱정하고 미워하는 마음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건강해야 지금까지 나에게 준 사랑의 큰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

아무 의미 없이 이 병원에서 15개월 가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의 생각과 내 행동의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나름의 고민이 있었고, 현재 이 시간을 투자해서 다가올 미래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며 남은 인생은 정말 나다운 인생으로 살아갈 자신도 생겼다.

그리고 정말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끝까지 함께 가슴아파하고 믿어주고 고생해준 가족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전에 부모가 무슨 죄를 지어서 나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고 아파해야하냐고 내 입으로 얘기를 꺼냈었던 생각이 난다. 그럴 때 부모님은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행동을 해야 좋든 나쁘든 결과가 나온다. 이 세상 힘들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다. 삶에 의욕이 없고 정말 살기 싫다면 죽는 게 맞고, 죽기 싫으면 선택한 만큼 그 인생 시도하지 않는 것 보다 작던 크던 간에 뭐든지 해보는 게 낫다고 본다. 모르는 것에는 당연히 익숙하지 않기에 실패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다. 2의 인생을 향해 또 열심히 달리다가 쉬기도 하고 넘어지더라도 포기하는 인생을 선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 여기까지 퇴원이 10일 정도 남았다.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 빨리 지나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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