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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사랑회복수기 회복작 -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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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1-04 09:43 조회4,2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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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에서 언제나 잘못된 선택만 해온 기분이 들었다. 

처음 술을 마시게 된 스무 살 무렵부터 내 인생은 내가 꿈꿔온, 설정한 궤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엄하신 부모님 밑에서 맏이라는 압박감에 의기소침하게 자란 나는 성인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기쁨에 자연히 스며들었다.

가족들에게서 벗어나 새로 사귄 친구들은 유쾌하고 다정했고 나는 들떠 있었다.

어느 새내기 모임에서 선배들에 의해 사이다를 섞은 술을 연거푸 3잔을 마시게 되었다.

그것이 내 인생 첫 번째 음주였다.

자의가 아니었다보니 선배들의 술을 마시라는 요구는 짜증스러웠다.

"이런 걸 왜 마실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맛이 없었고, “그냥 사이다가 훨씬 맛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선배들을 피해 밖으로 도망 나와 있었다.

나처럼 처음 술을 마신 동기들 몇이 새빨간 얼굴로 도망 나와 있었고 우리는 친해졌다.

술은 맛이 없었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 덕인지 그날의 기억이 아주 나쁘진 않았다.

이후로도 선배들과의 모임은 2주에 한번 정도로 꽤 잦았는데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는 자리이다 보니 나는 자연히 술 자체의 흥미를 가지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21살이 되면서 달라졌다.

밤이고 낮이고 같은 이유로 불러내던 선배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며 선배 행세도 했다.

학기가 끝나고 나는 2년 휴학이라는 긴 방학을 선택했다.

3학년이 되면 해야 할 공부와 과제를 고려해 스스로 준비하는 기간이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친구들을 만나 노는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사실 그 무렵부터 나라는 인간이 술을 탐닉하기 시작한 거 같다.

친구들을 만나도 술을 마시기 좋은 저녁 시간, 장소에서 약속을 잡았고 나 스스로 그런 상황을 계속해서 유도했던 것 같다.

도서관에 가는 일에 흥미를 잃었고 친구들과 술 없이 만나 수다 떠는 일이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내가 새내기 시절 그렇게 싫어했던 선배들처럼 나는 변하고 있었다

3학년이 되고 복학을 위해 돌아온 나에게 학교는 더 이상 관용이라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우수생이 아니었고 준비하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밤새 준비한 결과물들은 찢겨서 창밖으로 날라갔다.

새로운 전공 공부는 나를 힘들고 지치게 했고 패배감에 몸부림 쳤다.

그러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삼수생, 편입생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상황을 위로하며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 처음 나는 결석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더 이상 학교에 묶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를 벗어나고자 기를 쓰고 졸업 준비를 했고 다행히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졸업 후 나는 곧장 취업 준비를 시작했지만 5개월 만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시작했다.

편하고 별 다른 재주가 없어도 되는 일이었다.

일은 힘들지 않았지만 본인 일을 떠넘기는 동료가 나를 괴롭게 했다.

늦은 시간 결혼한 상사가 전화를 거는 일도 종종 있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그냥 참으라 하셨다. 좋은 직장이니 그냥 꾹 참고 버티라 하셨다.

회식 자리는 특히 괴로웠다.

나는 결코 회식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

정말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대신 회식이 끝나면 귀갓길에 술 두 병을 샀다.

집으로 와서 술을 머그컵에 잔뜩 따르고 홀짝거리며 분을 가라앉히고 잠들었다.

처음엔 회식 날만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렇게 술을 사서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스스로 문제임을 느꼈지만 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 내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며 핑계 대고 외면했다.

스스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님께 내 걱정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어느 봄 날 마침내 나는 그 일에서 벗어났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냥 한없이 멍했다.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쓰러뜨렸다.

친구들은 고향에 없었고 홀로 술에 집착을 시작했다.

내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을 내가 알아채고, 부모님이 알아채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마치 기계처럼 감정이 사라진, 그러나 기계와는 달리 기진맥진한 사람이 되었고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젓가락을 사용할 때 손이 떨려옴을 느꼈다.

부모님은 결국 내게 음주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했고 바로 잡기 위해 애쓰셨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병원 치료도 시작했으나 잠시 호전되는 듯 보이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이후로 다른 직업을 가졌고 직업 만족도가 꽤 높았으나 술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내 모든 걸 지배했다. 나는 이따금 지각했고 또 어떤 날은 결근했다.

사회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거의 확실시 되었을 때 부모님은 결극 나를 입원시켰다.

입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은 내게 닥치지 않을 거라는 듯이 잘못된 음주 습관을 몇 년 동안 지속했다.

몇 달 안 마시다가도 또 마시길 반복했고 그때마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나는 역겨워 했다.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이 내게 가득 찼다. 입원은 그랬다.

비참함에 울며 잠들고 일어나서 상황을 회피하려해도 이미 나는 병원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음주 문제를 스스로 바라보며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매일 각오를 다지고 눈물을 흘렸다.

그 철옹성 같은 다짐과 스스로와의 약속을 가지고 나는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몇 달이 지나고 나는 점점 해이해졌다.

사람들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 했지만.

내게는 망각이 악몽 그 자체였다. 그 눈물을 나는 곧 잊어버렸고 다시 미끄러지고 일어서길 반복했다.

가족이 눈치 챌 때도 있었고 비밀스럽게 넘어가는 날도 있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결국 나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이렇게 입원해 있다.

한사랑병원에서의 생활은 내가 우려했던 만큼 비관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더 이상 비참하지도, 침울하지도 않다.

아직 자신감이 넘치고 의욕이 많은 상황은 결코 아니지만 나는 이제 차분히 생각하고 나를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배려와 용서가 내게는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내게 좀 더 친절해지고 이젠 용서해주려 한다.

나는 오직 그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다.

입원해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내게 그저 허송세월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 빈 시간은 다른 축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 시간은 고난이 아니라 과정인 것이다.

결국 나는 술이 없는 삶을 감사하게 여기고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나는 나를 믿는다.

내 감정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을 미래의 내가 소중히 여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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